교육제도 및 과거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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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서원,성균관에서 유교경전으로 선비를 배양하고

 

과거시험(대과)은

사서오경 중심으로 출제

 

 

 

서당교육(초급)

서원교육

(중급교육)

성균관(고급교육)

 

 

square31_blue.gif 조선시대의 교육제도  

 

조선조는 이상적인 유교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국가에서는 상당히 체계적인 교귝체계를 유지하였다. 아울러 학부모들은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이 매우 높았으며,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물론 의무교육제도가 없었으나, 사교육기관인 서당에서의 초등교육은 활발하게 이루어 졌으며,부모들의 이러한 교육열에 따라 마을마다 서당이 생겨났다. 이들 서당의 교육과정은 대개 5살 또는 7살이 되면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편 중등교육은 향교에서도 맡았다. 향교는 고을마다 설치한 공교육기관이었다. 가정이나 서당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뒤 향교에 들어가 2단계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인원이 제한되어 아무나 입학할 수는 없었다.

서당에서 맨 먼저 배우는 책은 천자문이었다. 본격적인 학문에 대한 교육을 받기에 앞서 일단 문자를 익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배우는 책은 ‘동몽선습으로 인간의 기본윤리인 오륜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맨 먼저 인륜교육을 시키려는 의도였다.

 

다음으로 배우는 책은 명심보감이었으며, 명심보감에는 생활에서 반드시 익혀야 되는 교훈이 될 여러 명구와 일화를 담았다. 이런 내용을 여러 고전과 문집, 역사책에서 발췌했다. 여러 가지 내용을 편(篇)으로 분류했는데 마음을 밝히는 심성교육을 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다음으로 배우는 책은 ‘통감절요’이다. 이 책은 중국의 통사를 적은 ‘자치통감’을 줄여서 ‘절요’라 했다. 난신적자(亂臣賊子)를 가려내 명분을 바로잡고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해 후세의 거울로 삼으려는 역사관에서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배우는 책은 ‘소학’이다. 학동이 집안에서 청소를 하거나 어른을 공경하는 등의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편집한 책이다. 이 다섯 종류의 책들이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의 단계에서 가르치는 기본 교과서였다. 이들 책은 한결같이 문사철(文史哲)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에 앞서 그 기초 소양을 기르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square31_blue.gif 주요한 교육내용

 

조선조 교육내용의  근간은 유교의 이념을 구현할 인간교육 또는 충효를 가장 중심의 덕목으로 내건 윤리교육, 그리고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 수양을 위한 학문)과 위인지학(爲人之學, 남을 다스리는 학문)을 위한 교육목표에 두었다. 따라서 인(仁, 사랑하는 것)과 덕(德, 베푸는 것)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교육이념을 충실히 배운 학동들은 성장해서 무엇보다 인간됨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잘 받드는 인간형이 될 수 있었다. 또 향당에서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함양하고 벼슬자리에 나와서는 인덕을 베푸는 치자가 될 수 있었다.

 

square31_blue.gif 조선조의 과거시험

 

고려시대의 반성으로 국가에서는 관리 등용을 위한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게 되고 그 선발기준은 철저하게 유교국가의 건설이라는 국가의 비젼을 구체화한 것이었으며 과거를 통하지 않고는 등용의 길이 거의 없어졌다.


과거와는 구별된 취재(取材)·음직제도(蔭職制度:蔭敍·南行)에 의한 문음(問蔭)·이과(吏科)·도시(都試) 등이 있었으나, 문과가 가장 어렵고 중시되었다. 과거의 응시자격은 수공업자·상인·무당·승려·노비·서얼(庶孼)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다.


양반의 자제들은 어릴 때 서당(書堂)에서 한문의 기초과정을 배운 뒤 8세가 되면 중앙의 사학(四學)과 지방의 향교(鄕校)에 진학하여 수학한 유생들이 소과(생원과·진사과)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생원·진사가 되었다.


생원과 진사는 다시 서울의 최고 학부인 성균관(成均館)에 진학하였고, 이 성균관의 유생들이 대과에 응시하여 3차에 걸쳐 시험을 보아 갑·을·병 3과로 나누어 그 등급이 결정되었는데, 갑과의 장원 급제자는 종6품 이상의 참상관(參上官)으로 임명되고, 병과 합격자는 정9품 이상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이들 과거시험의 시기는 3년마다 보는 정기시험인 식년시(式年試)가 원칙이었으나, 1401년 태종 때부터 실시된 증광시(增廣試:큰 경사가 있을 때), 57년 세조 때의 별시(別試), 그리고 29년 세종 때 국왕이 성균관에 가서 시험하는 알성문과(謁聖文科) 등이 있었다.